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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感 : 감상을 씁니다

[권일용X고나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비참을 기록하는 일

by 지구인숙 2023. 11. 5.

 

문장들

 

- 낡은 조직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나쁜 방식보다 낯선 방식이 아닐까

범죄로 인한 상처를 공개함으로써 다른 범죄를 예방한다는 공익성도 그 상처를 다시 헤집는 아픔보다는 작았다.

줄곧 스스로에게 세상은 왜 이해하기 어려운가 라고 자문했다. 그 질문을 조금 더 구체화하면 왜 2000년대 한국에 공감능력을 상실한 새로운 인간종이 태어났는가 라는 질문이 된다. 이 작가로서의 질문은 다섯 살배기 딸에게 세상을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라는 생활인으로서의 질문과 닿아 있다. 나는 그 답을 찾는 대신, 그 답을 찾는 사람의 삶을 좇았다.

그 뒤로 8년 넘게 감식반 근무를 했다. 동기들은 결코 그런 식으로 경력 관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윤외출은 경찰대 동기들보다 경정 승진이 4,5년 늦어졌다. 경찰대학 졸업 후 경위로 임관하고 1993년 경감으로 승진한 뒤, 8년 넘게 같은 계급에 머무른 것이다. 
윤외출은 재미없는 승진보다 재미있는 업무를 택했다. 과학 수사에 미친 경찰이 한명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돈키호테는 혼자 싸울 수는 있어도 혼자 승리할 수는 없다. 

실험에는 돈과 사람이 드는 법이다. 공무원 조직 간의 경쟁, 사내 정치, 견제 따위는 바로 그 돈과 사람의 배분을 두고 벌어진다. 

윤외출과 통화한 뒤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힌 것같이 한마디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이 실화는, 이 돈키호테들이 어떻게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링팀을 만들고 그들이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봄날이었다. 2001년 5월 10일, 낮 최고기온이 21도까지 올라갔다. 서울 성동구 중랑천 둑길 놀이터는 오후 6시에도 날이 좋았다. 중랑천 상류 근처는 저지대다. 예부터 홍수 때 범람이 잦았다. 1990년대 말 여름 수해를 입은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하류인 군자교 근처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2001년경에도 봄이면 꽃이 많이 피었다. 

토요일이었고, 노인은 언제나처럼 폐품을 찾았다. 

네 살 아이가 느꼈을 공포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만 3세 이후 아이는 어른에 버금가는 다양한 정서를 형성하고 느낄 줄 알게 된다. 기쁨, 슬픔, 무서움을 느끼고 화를 내는 것은 물론, 자존심과 수치심을 알게 되는 것이다. 2세 유아는 남이 듣건 말건 신경쓰지 않고 떠들지만, 4세 아이는 상대를 의식한 대화를 한다. 미운 네 살이라는 표현처럼 자아가 생기고, 먹고 싶은 것이나 사고 싶은 것을 가리키며 떼를 쓰기도 한다. 아직 경계심이 없어 고작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낯선 어른을 따라나섰지만, 지연이도 공포를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평범한 네 살 아이였을 것이다. 그 아이가 살려달라고 울면서 애원했음에도, 남자는 아이를 죽였다. 

세 사람은 동굴 호수 아래로 잠수하는 다이버처럼 조현길의 어두운 마음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처음으로 어떤 범죄는 사회적 범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건설사는 부실시공을 했고 교량의 유지 관리를 담당한 서울시 공무원은 태만했다. 이들 건설업자와 공무원들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1997년 11월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사고로 서른두 명이 숨지고 여섯 명이 다쳤다. 추락한 버스에는 여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는데, 버스가 거칠게 끊어진 교각의 단면에 부딪히면서 시신이 많이 훼손됐다. 

네 살 여아를 강간하고 죽인 40대 남성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형사재판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사실 인정과 양형. 일부 피고인은 범행 자체를 감추고 부인하기 떄문에 범죄의 사실관계가 무엇인가가 쟁점이 된다. 팩트 하나로 유무죄가 갈리고 형량에 차이가 생긴다. 다음은 적절한 죗값, 즉 형량에 대한 판단이다. 똑같이 사람 한 명을 죽여도 동기, 수법 등에 따라 형량은 집행유예부터 무기징역까지 천차만별이다. 

2003년 9월 25일의 아침도 평범한 가을날이었다. 새벽 기온은 15.3도였지만 낮 최고기온은 25.6도였다. 일교차가 크고 바람없이 맑은 하루였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지방경창청 건물 고층에서는 북한산이 바라다보인다. 파란 가을 하늘을 보면서 범죄를 떠올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권일용이 일하는 서울지방경찰청 3층은 바깥과는 다른 세계 같았다. 날이 좋든지 좋지 않든지, 프로파일러와 형사들은 랜턴을 들고 일부러 어두운 곳만 걸어 다니는 사람과 같다. 그것이 그들의 일이므로. 

M은 모두스로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의미하는 라틴어다. 종종 양태로도 번역된다. O는 오페란디로 작동에 관한 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모두스 오페란디, 즉 MO란 범죄자가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행하는 행위, 다시 말해 범행 수법을 일컫는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으로부터 4년여가 지난 시기,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이 뿌리째 바뀌고 있었다. 그 변화는 파도 밑 심연의 해류와 같았다. 훗날 많은 사람들이 이 노인 살해 사건을 아리켜 사회적 변화의 반영이라고 주장했다. 공장의 압착기처럼, 어느순간부터 한국 사회는 일부 구성원들을 스트레스로 압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도시의 무관심이라는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에 주목했다. 대도시에서 무관심은 공기 같은 것이었다. 훗날 노인 연쇄살인범이 잡힌 뒤 그가 몸에 피를 묻힌 채 대낮에 지하철 화장실에 들렀어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이 하루 유동 인구가 수백만 명에 이르는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공기였다. 나와 무관한 사람들이 늘 내 옆을 지나가는 도시. 

인 콜드 블러드

장마가 계속되고 집 안의 습도가 낮아지지 않는 한 검은 곰팡이는 또 생겨날 것이었다. 

흩어진 척추뼈를 순서대로 발굴하는 고생물학자처럼 무의미해 보이는 사건 더미를 파헤치며 힘겹게 연쇄성의 고리를 이어갔다.

서귀포에 있던 나흘간은 날씨가 따뜻했다. 벚꽃이 폈다. 권일용은 양복 차림으로 햇빛이 반짝이는 서귀포 바닷가에 앉았다. 햇살 좋은 4월달에 잔잔한 물결이 일면서 막 반짝반짝하는데, 갑자기 물에 풍덩 빠져 죽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더라고요.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권일용은 우울해했다. 

 


 

끄적끄적

 

<돈 키호테>, 17세기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가 남긴 소설. 허구에 가까운 돈 키호테의 모험을 응원하게 되는 건 순전히 그가 내보인 용감함, 심지어는 숭고해보이기까지 한 그 정신력 때문일 거다. 돈 키호테의 모험은 결코 외롭지 않다. 동료 산초 파찬사가 있었기 때문에. 허구에 가까운 모험일지라도 산초 파찬사는 돈 키호테의 꿈을 지지하고, 이뤄내고자 부단히 애쓴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돈 키호테의 옆을 묵묵히 지켜가며.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여정을 돈 키호테의 모험에 빗댄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무수한 좌절과 고뇌, 그리고 그 좌절을 극복하게 만든 '그럼에도'라는 희망, 열정. 과학 수사란 생소한 분야에서 한 개인이 이뤄낸 발자취가 모험이 아니면 무엇일까. 

 

'악의 마음'은 인간을 피폐하게 한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자주 어지럽게 한다. 그 마음이 행동이 될 땐 필연 해를 입는 사람도 생긴다. 악의 마음을 읽는 일은 그래서 괴로움을 수반한다. 권일용 선생은 밤이고 낮이고, 평일이고 주말이고 그 마음의 중심에 있었다. 중심에 서 있는 동안에도 그 안으로, 심연으로 파고들었다. 그게 설령 선생의 업(業)이라고 해도 나는 감히 선생이 마주했을 백만가지의 좌절감을 헤아릴 수 없다. 고나무는 악의 마음을 읽는 선생의 일화를 기록했다. 비참을 기록하는 일의 괴로움 역시 결코 순탄했을 리 없다고 감히 단정해본다. 

 

문장은 차분하고 정갈하다. '봄날이었다. 2001년 5월 10일, 낮 최고기온이 21도까지 올라갔다. 서울 성동구 중랑천 둑길 놀이터는 오후 6시에도 날이 좋았다. 중랑천 상류 근처는 저지대다. 예부터 홍수 때 범람이 잦았다. 1990년대 말 여름 수해를 입은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하류인 군자교 근처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2001년경에도 봄이면 꽃이 많이 피었다.' 어느 봄날에 관한 묘사는 범연하다.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집어삼킨 봄날은 그래서 처연하다. 참상에 관한 기록을 읽을 때면 문장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짧은 순간이라도 문장에 스민 대상과 닿아있으려고, 나도 모르게 객체화하는 스스로가 싫어져서 언제부턴가 그런 습관이 생겼다.

 

책장을 덮고 훌훌 털어내기에 참 무거웠던 기록. 감상을 늘어놓기 참 어려운 이야기. 정직하게 가슴 아파하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묵묵히 애도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