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들
- 비교할 만한 대상 국가가 없을 만큼 높은 노인 자살률과 노인 빈곤, 고독사의 문제는 이 사회가, 자식들의 교육비를 대느라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제는 나이 들었다고 경멸까지 감수하도록 방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 경제는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놀랍게도 그것의 사회적 결과는 어둡고 암울하다. 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 작은 사업장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산재 사망 사고, 나빠져 가는 지방 현실과 나아질 기미가 없는 낮은 출생률, 줄어들지 않는 긴 노동시간, 소득 격차, 자산 격차, 남녀 임금격차, 비정규직 비율, 사교육비 지출 규모 등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지금과 같은 정치, 사회구조에서라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할수록 불평등과 차별, 혐오, 적대, 분노는 오히려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서울의, 좋은 대학을 나온, 정규직 직장인들과 소수 최상위 계층만이 발전의 혜택을 전유할 수 있는 이 구조에서 다수 시민의 행복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나 있고 억울해 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좌절과 혐오의 감정을 상대에게 투사함으로써 서로 대화하고 협력할 수 없는 마음 상태를 갖게 되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대화하지 않는 정치, 우리 사회의 중대 문제를 두고 협력하지 않는 정치, 이를 부추기는 것으로 돈과 위세를 갖게 된 신종 권력 언론, 신종 여론 형성자, 신종 시민 지식인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 약어와 신조어들이 우리 사회처럼 많이 만들어지고 빠르게 확산되는 사회는 없다. 꼴페미, 이대남, 한남충, 꼰대, 수박 등등 수많은 신조어들은 물론이고 앞에 '개'를 덧붙여 자신의 감정을 더 세게 표현한흔 관행은 모두 혐오와 야유에 기반을 둔다. 혐오와 야유가 정체성이 되는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공동체성, 연대, 공감 같은 가치들은 자라날 수 없다.
- 팬덤 정치는 민주주의를 벗어난 현상이 아니다. 민주주의에서라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정치 현상인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 팬덤 정치다. 다만 (중략)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혐오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다양한 선호에 기반을 두고 작동하는 체제다. (중략) 그런데 혐오는 하나의 선호 이외에 다른 것을 억압하는 문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팬덤 정치나 팬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나 의회정치가 정초하고 있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는 동료 시민들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없이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캐나다 출신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이를 연대의 가치라고 부른다. 그 핵심은 '우리'라는 호명이 얼마나 많은 시민 구성원을 포괄하고 있느냐에 있다. 다른 당과 그 지지자는 '우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민주주의도 얼마든지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촛불 집회는 진보만이 아니라 중도는 물론 보수 시민의 상당수가 참여하고 지지했던, 일종의 '사회적 대연정'이었다. 대통령 탄핵은 야 3당과 집권당 내 상당수 의원이 참여한 '4당 정치 동맹'을 통해 가능했다.
- 이 과정을 존중했담면 이후 집권한 문재인 민주당 정부는 진보와 중도 그리고 온건 보수 시민의 폭넓은 지지에 기반을 두는 한편, 광범한 정치 연합을 통해 박근혜 정권 시기에 노정된 문제를 함께 개선하는 방식으로, 공동 통치를 제도화했어야 했다.
-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촛불 '합의'는 촛불 '혁명'이 되었다. 다당제는 극단적인 양당제로 퇴락했다. 시민 대연정은 '문빠, 태극기부대, 광화문 집회, 서초동 집회, 이대남, 개딸, 극렬 유튜버'들로 난장판이 됐다.
- 미국의 사회학자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일이 일반화되고, 사회를 지탱하던 불문율에 대한 위반이 계속해서 일어날 경우, 다시 말해 비정상이 일상화되면 사람들은 기대를 낮추고 기준을 하향 조정해서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정상 상황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 민주주의는 늘 소란을 동반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팬덤 정치 또한 민주주의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대중적인 현상이자, 일상생활에 정보 통신 기술이 깊숙이 들어오면서 만들어지게 된 '초연결 사회'에서의 초현대적인 현상이다.
- 팬덤 정치나 양극화 정치 그리고 포퓰리즘 현상 모두 적대와 혐오를 심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다른 정치 세력과 상대하는 것을 대결과 승패의 문제로 보는 것도 유사하다.
- 그렇다 보니 공유할 수 있는 사실성의 기반은 좁아지고, 끝없는 논란으로 무엇이 사태의 진실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질 때가 많다.
- 팬덤, 포퓰리즘, 양극화 정치 모두 정치를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반反 정치의 정치'라는 특성을 공유한다.
- 한국의 팬덤 정치는 미국 공화당의 강경 보수 세력인 '티파티'나 미국 민주당의 진보적 세력인 '무브온'처럼 특정한 이념이나 정책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아니다. 난민 정책으로 촉발된 유럽의 우파 포퓰리즘과도 다르고 긴축정책에 대한 반대로 결집한 남부 유럽의 좌파 포퓰리즘과도 다르다. 우리식 팬덤 정치는 정책이나 이념을 지향하는 집단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보수도 싫고 진보도 싫다는 태도가 지배적이다.
- 신뢰, 존경, 권위, 책임 같은 것들의 가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를 여론조사 지지율, 조회 수, 구독자 수, 청취자 수와 같은 무윤리적 크기가 대신한다.
- 우리는 서로 다르며 또 달라서 발전시키게 된 것이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다. 우리는 달라서 싸울 수 있고 달라서 대립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다르기 때문에 더 풍부한 생각과 다양한 취향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름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인간 사회의 민주적 성취 여부가 갈린다.
- 무엇이 빠른 발전을 가능케 했을까. 그리고 빠른 발전을 위해 감수해야 했던 것은 무엇이고 희생해야 했던 가치들은 무엇이었을까.
- 우리 사회는 다른 목표나 다른 길을 잘 허용하지 않는다.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영역에서도 세계 일류의 선진 선도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처럼 주장될 때가 많다.
- 느리게 살 수 없으면 협동의 가치는 구현될 수 없다. 느리게 살 수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여력 없이 매사에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모두가 자신의 성과 목표, 성과 관리, 성과 평가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중략) 속도전의 내면화라고 할까, 모두가 피곤하고 지쳐가는 사회다. 팬덤 정치는 이런 사회에서 기승을 부린다.
끄적끄적
몇년 전 학과 선배와 점심을 먹을 때였다. 우린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치 이야기 하면 싸운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이건 단순한 말이 아니라 '담론'이 된 것 같다고. 그때 난 그 담론에서 비롯할 정치적 냉소가 문제라고 분명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잃게 만드는 주문같다고도 생각했었다. 요즘의 상황은 뭐랄까, 냉소도 열정도 그때보다 과해졌다. 뉴스를 보면서 피로감을 자주, 깊게 느낀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린왕자가 다녀온 소혹성 325호, 326호, 327호 ... 그 목록에 지금의 한국과 같은 소혹성이 있었다면. 거기서 어린왕자는 어떤 어른을 만났을까. 우리 사회의 큰 어른들을 어린왕자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래서 소혹성 815호에서 어린왕자가 만났을 사람들을 상상해봤다.
어린왕자는 내게 자신이 다녀온 소혹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오늘 소혹성 815호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 한다. 아직 기록된 적 없는 새롭고도 오래된 기억을.
소혹성 815호에서 어린왕자는 가장 처음 ‘투쟁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이곳의 지도자 중 하나였다. 어린왕자는 투쟁의 이유가 궁금했다. “아저씨는 무엇을 위해 투쟁하나요?” 그는 자신이 이제껏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해왔는지 늘어놓기 바빴다. 그는 우선 적과 투쟁하기 위해 집단을 모았다. 응원해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그가 서 있는 곳은 본래 적도, 싸움판도 없는 곳이었음에도. 투쟁하는 사람은 자극적인 언어를 썼다. 집단을 결집하게 하는 열쇠가 그것이었으니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그의 별에서 유령이 되어버린 낡은 이념을 자꾸만 환기했다. 쇄신을 위한 이 정의로운 투쟁에 얼마나 진심인지 보여주겠다며 밥을 거르기도 했다. 집단을 이룬 사람들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울고 분노했다. 누구를 위한 분노인지 어린왕자는 알 길이 없었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어린왕자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도 만났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유와 민주주의란 구호를 되풀이했다. 두 단어는 소혹성 815호를 운영하는 제1원칙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곳 사람들은 모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며, 소혹성 운영에 필요한 결정을 내릴 자격이 있었다. 어린왕자는 이 법칙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원칙은 아름답게 쓰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아 처벌했다. 자신의 뜻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에겐 카르텔과 괴담이란 별칭이 붙었다. 어린왕자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때로는 무서운 수단이 될 수도 있단 걸 깨달았다. 그와 투쟁하는 사람은 서로를 적대시했지만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집단적 환호나 적대를 지표로 삼았다.
소혹성 815호에는 300명의 지도자가 있었다. 그러나 결코 합치에 이른 적은 없었다. 지도자들이 모인 곳에 국민, 민생, 협치, 통합과 같은 말이 넘쳐났지만 그 말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어린왕자는 이곳에 타협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냈다. 소혹성 815호는 모든 속도가 빠른 곳이었다. "이견을 받아들이는 건 시간이 오래 드는 법이지" 어린왕자가 말했다. 장미의 입장을 이해하기까지 어린왕자는 우주의 별보다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곳의 문법에 맞을 리 없었다. 정치가 사라진 소혹성 815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자살, 가계 부채, 산재 사망, 이혼, 낙태 등에서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소혹성 815호의 지도자들은 왜 고민하지 않았을까. 어떤 사회를, 그래서 어떤 삶을 만들 것인지 말이야.” 매일 아침 자신의 별이 사라지지 않도록 바오밥나무 씨앗을 청소하던 어린왕자는 소혹성 815호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별도 있는 법이라고 말은 했지만 나 역시 어린왕자와 같은 생각을 했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하다고. 혹시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책의 저자는 말한다. '정치의 실종과 퇴행을 걱정해야 할 때지만, 그래도 변화는 지금의 정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정치를 싫다고 말하기는 쉬우나, 정치 밖에서 대안을 말하고 변화를 실현하는 일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냉소의 언어'가 아니라 '가능성의 언어'를 견지해야 한다.' 여러 분야 엘리트 집단 가운데 정치 엘리트가 가장 낫다는 생각에는 주춤했지만, '가능성의 언어'를 견지해야 한다는 문장은 여러 번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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