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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感 : 감상을 씁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 11호] 냉전과 신냉전 사이

by 지구인숙 2023. 10. 12.

5호부터 꾸준히 구독 중인 계간지. 잡지에 소개된 책들도 좋고, 글의 수준도 높아서 공부용으로 읽고 있다. 이번 호는 11호, '냉전과 신냉전 사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중국 로켓의 아버지 첸쉐쎤', '한국전쟁의 기원', '항미원조', 'The Triumph of Broken Promises', '동맹의 풍경', '우리가 간직한 비밀' 등을 다룬 서평을 실었다. 

그 외에도 영화 <오펜하이머> 비평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시장으로 간 성폭력', '웃음이 닮았다', '갑오경장연구', '동학농민봉기와 갑오경장', '친미개화파연구', '우리말이 국어가 되기까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등 이번호에 실린 서평은 대체로 재미있게 읽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양서를 추천받을 수 있어 좋다. 직접 읽기 버거운 책들도 얄팍하게나마 읽은 '척' 할 수 있다(?) 
 
요기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구독할 수 있다. 서리북과는 아무 연도 없지만 취향이 맞는 친구들에게 종종 추천하고 있다. 제철음식 다음으로 몸에 좋은 건 제철독서라며(우하하).
 

 


 
'신냉전'을 다룬 문장들

 

-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시작된 냉전시대는 소련의 붕괴 전까지 자그마치 40여 년이나 계속되며 전 세계에 큰 위협을 가했다. 하지만 냉전 시대가 완전히 청산되기도 전에 또다시 새로운 냉전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이른바 '신'냉전 시대이다. 주로 서방 세계와 중국 및 러시아 등과의 갈등으로 시작된 신냉전 시대는 이전의 냉전 시대와는 다소 다르게 서로 간의 교류를 통해서 경제적인 상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즉, 21세기에는 전 세계가 시장 경제의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기에 과거보다 제한적인 냉전 상황이지만, 국가 이익을위해서 서로 간에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 70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한국 역사상 가장 큰 지정학적 재난이었던 한국전쟁이 정전 협정으로 일단락되었다. 한국전쟁은 5천만 명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불과 몇 년 만에 발생한 전면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국제 사회는 큰 관심을 가졌다. 유엔 헌장의 규범에 따라 유엔이 개입하면서 여러 국가가 참전했으며 국제적인 협상을 통해 마무리된 것이었다.
 
- 주변 국가들의 첨예한 지정학적 대립과 국가 내부의 균열과 갈등이 맞물려 발생한 전쟁은 더 참혹할 뿐 아니라, 끝내기도 어렵고 전쟁이 종식된 후에도 내부에 많은 상처를 남긴다. 
 
- '항미원조'를 계기로 중국이 상대할 강대국은 이제 미국이 되었고 항미원조는 미국에 대해 '유일하게' 승리한 비서구 국가의 승리 서사를 제공해 주었다. 항미원조는 '반미 동맹'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으로 삼을 수 있는 서사의 출발점이 된다.
 
- 지금 항미원조가 주선율로 부상한다는 것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목표로 하는 시진핑 신시대'와 더불어 이 모든 관계에 대해 일정하게 정리된 노선이 수립되었기에 가능해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한국의 역사에서 용산은 식민주의와 군사주의, 냉전 질서의 상징적 장소이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조선이 병참기지화되어 가던 1908년 이래 용산의 역사는 외국군 주둔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었다. 식민지 시기 일본군의 사령부로 사용되던 용산의 군사 시설은 해방 직후 미군에게 그대로 인수되었고, 1945년 주한미군 사령부가 용산 기지로 이전하면서 용산은 그야말로 군사력을 앞세운 '한미 동맹'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0월 1일 조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미군의 대한민국 영토 내 주둔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에 이른다. 
 
- 현 정부는 기존 청와대를 "독재와 권위주의 권력의 상징"이라고 못 박았지만, '왜 용산인지'에 대한 토론도 없이 우리가 마주한 '용산 시대'는 헤게모니적 동맹 관계라는 냉전적 유산에 대한 기시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제복을 입고 거수 경례를 하는 군인들은 시간이 지나 시커먼 양복을 입고 국궁(鞠躬)하는 고위직 남성의 육신으로 돌아왔다. 
 
-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 종식이 선언되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세계적 차원'의 진단이었다. 신냉전을 통해 냉전은 종식된 적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고,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 냉전과 신냉전은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기원적 현재(originary present)'를 드러낸다. 물론 신냉전은 재냉전, 다시 말해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미국적 자유주의의 위기라는 맥락과 불안정한 국제 질서 속에서 새로운(new) 혹은 변형된(neo) 모습의 질서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스트 냉전과 신냉전은 모두 과거를 반추하는 술어적 표현을 넘어 현재를 구성하는 '낡은 것'의 위기에 관한 비판적이며 전환적인 사고를 요청하는 정치적 진단이어야 할 것이다.